윤석열 대통령이 6월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윤석열 정부의 권력기관이 한 방향을 보고 섰다. 문재인 정부의 흔적을 도려내는 사정(司正) 작업으로 시선이 향한다. 정쟁의 중심으로 떠오른 사안이 권력기관 내부 조사로 이어지고, 검찰에 고발장이 접수돼 수사가 이뤄지는 방식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앞서 권력기관 요직 또는 기관 상위 정부 부처에 검찰 출신을 배치했다. 검찰은 최근 단행한 인사로 친정부 체제를 구축했다. 검찰을 중심으로 한 전방위 사정 시스템이 작동하는 셈이다.

윤석열 정부 권력기관의 사정 신호탄으로 꼽히는 사건은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과 ‘탈북 어민 북송 사건’이다. 전 정부를 겨냥한 다른 의혹들이 먼저 수사선상에 올랐고 이 가운데 일부는 수사기관의 진상규명 작업이 급물살을 타고 있지만, 정치권과 법조계에선 두 사건을 새 정부가 전방위 사정의 방아쇠를 당긴 상징적 사건으로 지목한다.

두 사건을 본격적으로 사정 궤도에 올린 건 국가정보원(국정원)이다. 7월6일 박지원·서훈 전 국정원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국정원은 박지원 전 원장이 2020년 9월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당시 ‘월북’이 아닌 ‘표류’ 쪽에 무게를 싣는 첩보 보고서가 작성되자, 이를 삭제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판단했다. 서훈 전 원장에 대해서는 2019년 11월 탈북 어민 북송 당시 통상 보름 이상 소요되는 합동신문을 사흘 만에 종료하고, 탈북 어민들을 강제로 북한에 보낸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정원이 전직 원장 두 명을 동시에 고발한 건 전례가 없다. 문재인 정부 초기 전직 국정원장들을 겨냥한 움직임은 있었지만 고발이 아닌 수사 의뢰였거나 국정농단 수사 과정에서 파생된 문제였다.

국정원에 배치된 검찰 출신 인사들

국정원은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국내정보 활동을 중단하고 북한을 비롯한 해외정보 활동에 주력하면서 청와대·정부의 안보 및 대북정책 의사결정에 핵심 역할을 했다.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과 탈북 어민 북송 사건은 전 정부 대북정책과 직결돼 있다. 정보 당국의 한 관계자는 “국정원의 이번 고발에 따른 검찰 수사는 전직 국정원장을 넘어 곧장 전 정부의 핵심 권력층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사건이 정치 쟁점화되는 과정에서 국정원이 보조를 맞춘 모양새가 된 점도 눈에 띈다. 두 사건 모두 새 정부 출범 직후 북한과 관련한 지난 정부와 청와대의 대응을 놓고 의혹이 확산됐다. 6월16일 국방부와 해경이 ‘자진 월북 추정’이라고 발표한 기존 중간수사 결과를 번복하면서 불이 붙었다. 발표 뒤 국민의힘은 ‘해양수산부 공무원 피격사건 진상조사 TF’를 구성하고 문재인 정부와 야당을 향한 공세에 나섰다. 국민의힘 진상조사 TF는 7월6일엔 서욱 전 국방부 장관,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서주석 전 국가안보실 1차장을 직무유기와 직권남용·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정원이 전직 국정원장 고발 방침을 외부에 알린 건 그로부터 2시간 뒤였다.

2021년 3월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왼쪽)과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중앙통합방위회의에서 만났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원은 두 사람을 검찰에 고발했다.ⓒ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도 두 사건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6월17일 출근길 기자들과 만나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에 대해 “앞으로 더 진행이 되지 않겠나 싶다. 기다려보시라”고 말했다. 6월21일에는 탈북 어민 북송 사건과 관련해 “많은 국민들이 의아해하고 문제를 제기했는데, 한번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다”라며 사건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국정원 고발 이후 “혐의가 사실일 경우가 전제다. 자진 월북이라는 프레임을 국가가 씌우려 했다면, 귀순 어민이 대한민국 국민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입장을 먼저 고려해 인권을 침해했다면 중대한 국가범죄다”라고 규정했다.

대통령실은 통일부가 탈북 어민 북송 당시 사진 10장을 공개한 다음 날인 7월13일 진상규명 의지를 좀 더 명확하게 밝혔다. 강인선 대변인은 이날 “만약 귀순 의사를 밝혔음에도 강제로 북송했다면 이는 국제법과 헌법을 모두 위반한 반인도적·반인륜적 범죄행위다. 윤석열 정부는 자유와 인권의 보편적 가치를 회복하기 위해 이 사건의 진실을 낱낱이 규명하겠다”라고 말했다.

정치권과 정보 당국 안팎에선 6월 초부터 국정원에 배치된 검찰 출신 인사들을 주목한다. 6월3일 조상준 변호사가 국정원 기획조정실장(기조실장)에 임명됐다. 조 실장은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이던 시절 대검찰청 형사부장으로 일했다. 퇴직 후에는 김건희 여사가 연루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변호인을 맡았다. 기조실장은 조직과 예산을 총괄하는 핵심 보직이다. 조 실장 부임 이후 기조실 국장에는 수원지검 안양지청 형사2부장을 지낸 하동우 검사가, 신설된 감찰 심의관 자리에는 특수통으로 알려진 최혁 대구서부지청 부부장이 배치됐다. 현직 검사인 두 사람은 윤석열 정부 들어 국정원으로 파견됐다.

검찰 출신들이 요직에 배치된 시기 국정원은 내부에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과 탈북 어민 북송 사건의 진상조사를 맡을 TF를 각각 꾸렸다. 동시에 1급 부서장 27명 전원을 대기발령 조치하고 고강도 내부 감찰도 단행했다. 두 전직 국정원장 고발은 감찰 과정에서 확보한 진술 일부를 토대로 이뤄진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은 빠르게 움직였다. 국정원은 당초 대검찰청에 고발장을 냈는데, 대검은 접수 당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넘겼다. 중앙지검은 다음 날 수사팀에 배당했다. 공공수사1부(이희동 부장검사)가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을, 공공수사3부(이준범 부장검사)가 탈북 어민 북송 사건을 맡는다.

공공수사1부는 앞서 서해 공무원 유족의 고발장을 6월22일 접수해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 김종호 전 민정수석, 이광철 전 민정비서관 등에 대해 수사를 벌이고 있었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도 수사선상에 오르게 되면서 사실상 당시 정보 라인 전체가 수사를 받게 됐다. 수사를 이끄는 이희동 부장검사는 공안통 검사다.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 2020년 1월 인사 과정에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에게 “대검에 남겨달라”고 요청한 검사 6명 중 한 명이다.

대검찰청은 공공수사1부와 3부의 요청에 따라 1부에 검사 두 명, 3부에 검사 한 명을 파견했다. 기존 공공수사1부 검사는 7명, 3부는 6명이었다. 정부-청와대가 연결된 대북 관련 사건이라는 특수성과 수사 범위가 계속해서 넓어지는 점을 감안해 사실상 특별수사팀을 구성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공공수사1부는 7월11일께 국방부와 국정원 관계자들을 각각 참고인, 고발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이틀 뒤인 7월13일 오후 국정원을 압수수색했다. 고발장을 접수한 지 일주일 만이다.

전 정부 관련 의혹에 대한 검찰의 수사는 앞으로 더 넓고 깊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중앙지검은 최근 국민의힘이 4월 고발한 ‘문재인 정부 공공기관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국 전 민정수석 등이 고발당한 사건을 형사1부에 재배당했다. 서울동부지검이 수사 중인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과 다른 사건으로, 교육부·농림부·외교부, 그리고 청와대가 연루돼 있다. 문재인 정부가 전(前) 정부에서 임명된 공공기관 임원들을 상대로 광범위하게 사퇴를 압박했다는 의혹이다.

통일부는 2019년 탈북 어민 북송 당시 촬영한 사진(위)을 7월12일 공개했다.ⓒ통일부 제공

이 사건은 당초 반부패수사2부가 맡았지만 중앙지검은 형사1부로 재배당했다. 반부패수사2부에서 이 사건을 수사하던 검사 한 명, 반부패수사1부에 있던 다른 검사 한 명 등 특수통 검사를 추가로 배치했다. 수사 책임자인 중앙지검 1차장은 동부지검에서 ‘산업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지휘했던 성상헌 차장검사다. 현재 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는 ‘대장동 의혹’ 사건을, 반부패수사2·3부는 ‘옵티머스 펀드 의혹’ 등 수사를 진행 중이다. 그 밖에 형사5부는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 징계 과정에서 이성윤 법무연수원 연구위원과 박은정 검사의 위법행위가 있었다는 고발 사건, 이정수 전 서울중앙지검장 등이 ‘대장동 사건’ 수사를 지휘하며 ‘대장동 윗선 봐주기’를 했다는 의혹을 수사하고 있다.

당초 이 사건들은 형사부에서 맡을 수 없었다. 문재인 정부 시절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 수사 대상을 6대 범죄로 줄이고, 전국 검찰청 반부패수사부는 축소, 형사부 수사 권한은 제한하는 규정을 만들었다. 그러나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취임 이후 이 규정을 개정했고 7월4일부터 시행됐다. 앞서의 사건 배당·재배당은 이 시점 전후로 이뤄졌다.

검찰에 새로운 고발장이 추가로 접수돼 수사가 시작될 가능성도 있다. 감사원은 최근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과 관련, 당시 해양경찰청 간부들에 대한 감사를 시작했다. 당시 수사를 지휘한 해경 4명은 대기발령 중이다. 그 밖에 사전투표 관리 부실 논란과 관련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감사 중이다. KBS, 방송통신위원회도 감사 대상이다. 문재인 정부 때 임명된 김의철 KBS 사장과 한상혁 방통위원장이 이번 감사의 종착지라는 해석이 나온다. 감사원은 국정원 사례처럼 내부 감찰도 진행 중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봐주기 감사’를 했다는 의혹을 들여다보고 있다. 한 사정 당국 관계자는 “감사 결과에 따라 여러 건의 고발장이 검찰에 접수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전 정부와 관련한 감사 업무는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총괄한다. 유 총장은 공공기관감사국장으로 재직하던 2020년 월성원전 1호기 경제성 조작 사건의 감사를 주도하다가 감사연구원장으로 좌천됐고,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실세로 복귀했다.

‘특사경’ 동원해 검수완박 우회할 수도

국정원의 ‘진상조사’와 고발이 이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국정원은 앞서의 두 사건뿐만 아니라 문재인 정부 대북관계 전반을 조사하고 있다.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북측에서 고위급 인사 등 대규모 인원이 방한했던 시기 및 문재인 정부 시절 이뤄진 남북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 성사 과정 등에 대한 조사가 대표적이다. 당시 정부와 북한의 접촉 내용 및 전달받은 요구, 수용 여부 등이 조사 대상이다.

검찰이 이른바 ‘검수완박’ 법안을 우회하는 방식을 통해 사정 작업이 이뤄질 것이란 관측도 있다. 대검찰청은 오는 9월부터 대폭 축소되는 검찰 수사와 관련해 검찰이 직접 수사 대신 ‘간접적으로 수사를 지휘’하는 방식을 검토 중이다. 특별사법경찰(특사경)과의 협력 강화다.

특사경은 경찰이나 검찰 같은 수사기관이 아닌 행정 공무원에게 수사권을 부여한 제도다. 현재 중앙행정기관을 비롯해 서울시, 경기도 등 주요 지방자치단체 등 총 33개 기관에서 운영 중이다. 특사경은 모든 수사에 관해 검사의 지휘·감독을 받아야 한다.

특사경을 운용 중인 기관 가운데 특히 주목받는 곳은 ‘금융 검찰’로 불리는 금융감독원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부활한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합수단)과 금감원의 협업 가능성이 높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검찰 출신이다. 양석조 남부지검장과 함께 ‘윤석열 사단’으로 꼽힌다. 합수단에 금감원 또는 금융위 소속 특별사법경찰관을 파견해 사실상 공동수사를 벌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금융 분야와 연결된 전 정부 관련 의혹은 라임·옵티머스 등 펀드 사기 사건 등이 있다.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6월15일 취임사를 하고 있다.ⓒ감사원 제공

전방위 사정 작업이 본격화하면서 정치권과 법조계에선 추락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을 둘러싼 고차방정식을 주목한다. 권력기관 내부 조사 및 감사, 검찰 수사 등이 본격화되기에 앞서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는 꾸준히 하락세를 보이다가 취임 두 달 만에 30%대를 맞이했다. 7월8일 발표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윤 대통령의 직무수행 긍정 평가는 37%로 나타났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정치권에선 새 정부 초기 전 정부에 대한 고강도 사정 유혹이 높다고 평가한다. 특히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과 탈북 어민 북송 사건은 더욱 그렇다. 대북 관련 사안은 보안과 기밀이 얽혀 있어서 공개적으로 사실관계를 밝히기 어렵고, 정권의 재량이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치적 활용도’가 높다. 여기에 ‘종북 프레임’은 오래전부터 보수 결집의 보증수표로 통해왔다. 국민의힘의 한 중진 의원은 “검찰 수사를 통해 문재인 정부의 민낯이 객관적으로 드러나고 이를 단호하게 대처하는 정부의 모습을 보면 여론도 움직이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반대로 전방위 사정이 윤석열 정부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이 ‘원 포인트’로 해결할 수 있는 특정 사안 탓도 아닌 데다,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도 지지율이 빠지는 만큼 사정의 효과가 높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이번 사정 작업의 중추는 검찰인데, 사정 작업이 고강도로 이뤄질수록 검찰 공화국이라는 부정적 이미지와 겹칠 수 있다. 종북 프레임이 통하는 시대는 지났다. 전 정부를 겨냥한 사정이 지지율을 더 깎고, 낮아진 지지율 탓에 검찰 수사 동력이 약해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